하이드네 아트뉴스vol. 20
Exhibition · 전시 소식
Gang Ju Yen · The 12th Solo Exhibition

비어 있어서, 이어진다강주연 조각전 · 열두 번째 개인전

원(圓)과 반복, 그리고 비움 — 서로 다른 존재가 이어져 하나가 되다
‘강주연 조각전’ 글씨가 쓰인 입구 벽 앞의 둥근 스테인리스 조각, 오른쪽 창으로 인사동 풍경

5층 입구, 전시 제목 아래 커다란 원 하나가 관람객을 맞습니다. 구멍마다 창밖의 빛이 걸립니다.

圓 · 反復 · 空
12회개인전
19점도록 수록작
7일10.28 – 11.3

전시 정보

전시명강주연 조각전Gang Ju Yen · The 12th Solo Exhibition
주제원(圓)과 반복, 그리고 비움 — 서로 다른 존재가 이어져 하나가 되다
기간2026. 10. 28 (수) – 11. 3 (화)
장소인사아트센터 5층 경남갤러리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 T. 02-735-7077
작가강주연조각가 · 경남조각가협회 회장 · 경남미술협회 수석부회장
강주연 조각전 현수막 — 원(圓)과 반복, 그리고 비움, 서로 다른 존재가 이어져 하나가 되다

전시 현수막

스테인리스 고리 수백 개가 서로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하나의 둥근 형상을 이룹니다. 고리 하나하나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빈 곳 덕분에, 빛과 시선과 바깥 풍경이 조각 안으로 들어옵니다.

창원에서 활동해 온 조각가 강주연의 열두 번째 개인전이 10월 28일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5층 경남갤러리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1998년 창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지 스물여덟 해, 이번에는 2026년 신작 「念(념)」 연작 열아홉 점을 들고 서울에 왔습니다.

작가가 붙든 조형 언어는 단 세 가지입니다. 전시장 벽에 직접 써 붙인 글에서 그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圓원하나의 독립된 존재이자
순환과 연결의 상징
反復반복원을 만들고 잇는 동안
쌓이는 시간과 행위
空비움빈 공간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를 잇는 자리

제목 ‘念’은 생각, 마음에 품은 뜻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작가는 작품마다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고 Work2026-念 뒤에 번호만 달았습니다. 같은 생각을 다른 모양으로 열아홉 번 되풀이한 셈이지요. 그 되풀이 자체가 이 전시의 두 번째 단어, ‘반복’입니다.

I

작가의 말 — 원과 반복으로 묻는 관계

도록에 실린 작가노트 전문입니다.

나의 작업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독립된 존재이면서도 타인과 자연, 사회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나는 이러한 존재와 관계의 구조를 ‘원(圓)’과 ‘반복’이라는 조형 언어로 탐구해 왔다.

원은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형상으로, 순환과 지속, 통합과 완전성을 상징한다. 작품 속 각각의 원은 독립된 개체이지만 서로 연결되고 중첩되며 더 큰 관계의 장을 형성한다. 크기와 간격, 방향이 다른 원들의 반복은 고유한 리듬과 질서를 만들어 내며, 그 과정에는 시간과 행위의 흔적이 축적된다.

원 내부의 비어 있는 공간은 결핍이 아닌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는 자리이다. 관람자의 시선은 그 공간을 통과하며 빛과 주변 환경을 함께 인식하고, 작품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열린 구조로 확장된다.

결국 나의 작업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연결되고 공존하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반복과 비움을 통해 인간과 자연, 개별성과 전체성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을 드러내고, 관람자가 그 안에서 존재와 관계의 의미를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작가노트강주연
II

열아홉 개의 念

도록에 실린 2026년 신작을 모두 옮겼습니다. 도록 순서 대신 형태를 따라 네 갈래로 묶고, 사이사이에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평론 구절을 끼워 두었습니다. 작품 크기는 가로×세로×높이 순입니다.

盤
둥근 판DISC

가장 단순한 원. 수백 개의 고리가 모여 다시 하나의 큰 원이 됩니다. 작은 원과 큰 원,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Work2026-念 XI, 크고 둥근 스테인리스 원판 조각에 비스듬히 햇빛이 드는 모습
Work2026-念 XI
65×20×69.5cm · Stainless Steel · 2026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입니다. 도록을 펼치면 평론보다 먼저 나오는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Work2026-念 XIII
Work2026-念 XIII
33×9.5×38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XV
Work2026-念 XV
30×12×39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III
Work2026-念 III
20×9.3×24.5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VII, 가운데가 뚫린 고리 모양 조각
Work2026-念 VII
33×10.5×39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원 가운데 다시 큰 원을 비웠습니다. 작은 비움들이 모여 큰 비움 하나를 둘러쌉니다.

球
구와 알SPHERE

판이 부풀어 공이 되고, 공이 늘어나 알이 됩니다. 앞에서 본 구멍 너머로 뒤쪽 구멍이 겹쳐 보이기 시작합니다.

Work2026-念 V, 두 개의 기둥 위에 올린 구
Work2026-念 V
21×8.5×27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VI, 밝은 나무 좌대 위 구
Work2026-念 VI
25×11.5×35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VIII, 알 모양 조각
Work2026-念 VIII
24.5×10×37.5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XIV, 물방울 모양 조각
Work2026-念 XIV
24×10×45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아래는 둥글고 위는 뾰족한 물방울 꼴. 떨어지기 직전의 한 방울처럼 위로 모입니다.

延
길게 뻗다STRETCH

원이 옆으로 눕고 위로 솟습니다. 외형은 달라져도 원을 잇는 방식은 그대로입니다.

Work2026-念 IV, 배처럼 길게 뻗은 타원형 조각
Work2026-念 IV
62×14×25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XVI, 넓적한 타원형 조각
Work2026-念 XVI
52×10.5×34.5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X, 위로 길게 솟은 조각
Work2026-念 X
17×11×47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Work2026-念 XII, 탄두처럼 솟은 높은 조각
Work2026-念 XII
25×11×58cm · Stainless Steel, Wood · 2026

탄두처럼 끝이 뾰족하게 솟은 형태입니다. 고리가 촘촘해 안쪽 고리가 겹겹이 비쳐 보입니다.

色
나무와 색WOOD · COLOR

이번에는 금속 대신 나무에 색을 입혔습니다. 원은 더 이상 고리가 아니라 표면에 박힌 단면이 되고, 비움은 그 한가운데의 작은 구멍으로 남습니다.

Work2026-念 IX, 붉은 원판에 나무 원들이 박힌 작품
Work2026-念 IX
40×9.5×35.5cm · Wood, Polyester 혼합매체 · 2026
Work2026-念 II, 검은 구에 나무 원들이 박힌 작품
Work2026-念 II
21×21×26cm · Wood, Polyester 혼합매체 · 2026
Work2026-念 I, 초록빛 유기적 형태의 작품
Work2026-念 I
24.5×13×47cm · Wood, Polyester 혼합매체 · 2026

연작 가운데 유일하게 기하학을 벗어난 형태. 휘어진 몸 한쪽이 길게 뚫려 있습니다.

Work2026-念 2, 초록색 고리 모양 벽걸이 작품
Work2026-念 2
40×40cm · Wood, Polyester 혼합매체 · 2026
Work2026-念 1, 노란 타원형 벽걸이 작품
Work2026-念 1
8.5×66cm · Wood, Polyester 혼합매체 · 2026

念 1과 念 2는 벽에 거는 작품입니다. 전시장에서는 가벽 하나에 나란히 걸렸습니다.

III

흰 방, 점점이 놓인 원들

넓은 전시장 한가운데를 비워 두고, 작품을 하나씩 좌대 위에 띄엄띄엄 세웠습니다. 작품 사이의 거리까지 보여 주려는 배치입니다.

앞쪽에 높게 솟은 조각과 안쪽으로 이어지는 전시장
창가 쪽에서 본 전시장 전경
전시장 안쪽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흰 벽을 따라 검은 좌대 위에 조각들이 간격을 두고 놓인 전시장, 가운데 관람객 한 명

가운데를 비워 둔 흰 방. 작품과 작품 사이의 빈 바닥도 이 전시의 일부입니다.

전시장 벽에서

원(圓), 존재와 관계의 연결

나의 작업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원(圓)’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이자 순환과 연결을 상징한다. 크기와 간격이 다른 원들은 서로 만나고 중첩되며, 개별적인 존재들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질서를 형성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반복’은 시간과 행위의 축적을 의미한다. 원을 만들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차이와 변화는 삶의 흐름과 관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비움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는 열린 공간이다. 그 사이로 빛과 시선이 통과하며 작품은 주변 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나는 이러한 조형적 구조를 통해 개별성과 전체성,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과 공존의 질서를 표현하고자 한다.

IV

가까이, 더 가까이

개막일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멀리서는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이, 다가갈수록 수백 개의 작은 원으로 흩어집니다.

넓적한 타원형 스테인리스 조각을 가까이서 본 모습

Work2026-念 XVI. 고리 사이를 잇는 가는 선들까지 보입니다.

고리 모양 조각을 비스듬히 본 모습, 가운데 구멍으로 전시장이 보인다
念 VII — 가운데 구멍 너머로 전시장이 들어옵니다
전시 제목 벽 아래 놓인 큰 원판 조각
입구 벽 아래의 원판
붉은 원판 작품 너머로 이어지는 좌대들
念 IX 너머로 이어지는 좌대들
입구 쪽 꽃과 함께 놓인 원판 조각과 전시 제목 벽
축하 꽃이 놓인 입구
가벽에 나란히 걸린 노란 타원형 작품과 초록 고리 작품
念 1 · 念 2
작가노트가 붙은 벽과 양옆의 조각
작가의 글이 붙은 벽
초록 조각의 둥근 구멍 너머로 보이는 흰 벽과 좌대 위의 작품들

초록 조각의 구멍에 눈을 대면, 그 너머로 전시장이 둥글게 담깁니다. 평론가의 말처럼 구멍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작품의 구멍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그 답이 생성될 수 있는 자리를 열어 놓는다.”— 정종효, 「강주연의 조형, 원으로 연결되는 관계의 존재들」에서
V

평론 — 원으로 연결되는 관계의 존재들

도록에 실린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글 전문입니다.

강주연의 조형,
원으로 연결되는 관계의 존재들

강주연의 조각은 하나의 독립된 형상이면서 동시에 외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이다. 작품의 표면을 따라 자리한 원형의 구멍들은 유기적인 덩어리의 흐름 속에 일정한 리듬을 형성하며, 단단한 물질의 표면에 독특한 시각적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작품을 구성하는 원형의 개구부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깊이, 간격을 지니면서도 하나의 조형적 질서 안에서 공존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원이라는 형태 자체보다 원을 통해 드러나는 비어 있음의 의미이다. 작가의 조각에서 구멍은 단순히 물질이 제거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통로이며, 서로 분리된 공간들이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자리이다. 물질의 형상을 만드는 일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관계를 탐색한다.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타인과 자연, 사회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인식에서 그의 작업은 출발한다. 이러한 사유는 ‘원’과 ‘반복’이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구체화된다. 원은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형상으로서 순환과 지속, 통합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원은 완결된 기하학적 도형으로 머물지 않는다. 원은 구멍이 되어 조각의 표면을 뚫고, 그 너머의 공간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때 원의 의미는 닫힌 윤곽에서 열린 통로로 이동한다. 원이 하나의 존재를 상징한다면, 그 내부의 빈 공간은 그 존재가 다른 존재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원은 서로 다른 크기와 위치를 점유하지만, 그 차이로 인해 오히려 전체의 구조가 형성된다. 개별성은 전체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전체 역시 개별적인 요소들의 차이를 통해 자신의 질서를 획득한다.

이러한 조형적 특징은 구멍의 배열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작품 표면의 원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크기가 다른 원들은 불규칙한 간격으로 배치되고, 어떤 구멍은 깊고 어둡게 열려 있는 반면, 다른 구멍에서는 반대편의 빛이나 공간이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관람자의 시선은 표면에 머물지 않고 구멍을 따라 이동하며, 하나의 원에서 다른 원으로 건너간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고정된 시각적 대상에서 벗어나 시선의 이동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경험의 장으로 변화한다. 반복은 동일한 형태를 되풀이하는 기법이 아니라 차이를 생성하는 방식이며, 개별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관계망으로 조직하는 원리인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반복에는 제작 행위의 시간도 축적되어 있다. 원을 만들고, 배열하고, 연결하는 행위가 거듭되면서 작품에는 손의 움직임과 판단의 흔적이 남는다. 각각의 원은 동일한 형식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크기와 방향, 깊이와 주변 형태의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인상을 형성한다. 이 미세한 차이들이 축적되면서 작품은 단순한 형태의 집합을 넘어 고유한 리듬을 획득한다. 특히 유기적으로 굴곡진 외형과 원형의 구멍들이 이루는 관계는 규칙과 불규칙, 질서와 우연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전체의 윤곽은 하나의 생명체를 연상시키지만, 그 내부를 구성하는 원들은 일정한 중심에 종속되지 않는다. 작품은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다수의 중심과 서로 다른 방향성을 품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차이를 유지한 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조형적으로 구현한다.

최근 신작에서도 이러한 조형적 탐구는 이어진다. 길게 뻗은 타원형과 구형, 중앙에 빈 공간을 품은 환형의 구조는 서로 다른 외형을 취하면서도 원형 요소들의 반복과 연결이라는 공통된 조형 원리를 보여준다. 특히 원형 요소들이 입체 전체를 구성하고 그 사이의 공간이 형상의 일부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비움은 단순한 개구부를 넘어 조각의 형태와 구조를 형성하는 원리로 확장된다. 이는 원과 구멍을 통해 개별적인 존재와 전체의 관계를 탐색해 온 작가의 관심이 새로운 형태 속에서도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강주연의 조각에서 비움은 물질의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조형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물질을 덧붙이거나 깎아 내면서 형상을 만들어 가는 예술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구멍은 형상을 완성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마련된 공간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와 의미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구멍이 없다면 작품은 하나의 닫힌 덩어리로 남겠지만, 구멍이 생기는 순간 조각은 주변 공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빛은 구멍을 통과하고, 시선은 그 안쪽을 향하며, 반대편의 공간은 작품의 일부처럼 인식된다. 따라서 작품의 경계는 더 이상 표면의 외곽선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각의 내부와 외부, 물질과 공간, 대상과 환경은 서로 분리된 항목이 아니라 상호 침투하는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주연의 작품은 비움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될 수 있다. 존재는 자기 안에 완결된 실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없는 것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구멍은 조각의 결핍처럼 보이지만,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외부의 빛과 공간을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와 연결될 수 있다. 비움은 무언가가 결여된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가 발생하는 조건인 셈이다. 물론 이를 특정한 철학적 개념과 곧바로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가 물질과 비물질,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의 조각은 관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그 관계를 직접 바라보고 경험하도록 만든다.

관람의 경험 역시 작품의 의미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관람자는 조각의 정면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지만, 곧 구멍의 크기와 깊이, 위치에 따라 시선을 조절하게 된다. 어떤 구멍에서는 반대편의 공간을 발견하고, 다른 구멍에서는 어둠과 막힘을 마주한다. 모든 구멍이 동일한 방식으로 열려 있지 않다는 사실은 관계가 언제나 투명하거나 완전한 소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한다.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지만 언제나 그 존재의 내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의 거리를 유지한다. 이처럼 구멍은 소통의 가능성인 동시에 이해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작품의 조형적 깊이는 바로 이 양가성에서 발생한다. 연결은 경계를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라, 경계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강주연의 조각에서 원은 결국 하나의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관계가 시작되는 자리이며, 구멍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서로 다른 크기의 원들이 하나의 조각 안에서 공존하듯, 개별적인 존재들 역시 차이를 지닌 채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작품은 독립성과 연결성, 물질과 비움, 내부와 외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탐색한다. 이때 조각은 주변 세계로부터 분리된 자율적인 물체가 아니라, 빛과 공간, 시선과 관람자의 움직임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의미를 확장하는 열린 구조가 된다.

결국 강주연의 작업이 제안하는 것은 완벽하게 닫힌 세계의 형상이 아니라 서로에게 열려 있는 존재들의 풍경이다. 그 세계에서 비움은 결핍이 아니며, 차이는 분리의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비어 있음과 차이가 있기에 연결이 가능하고,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 작품 표면에 반복되는 원들은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면서도 각자의 고유한 위치를 잃지 않는다. 그 사이를 통과하는 빛과 시선은 조각의 경계를 넘어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든다. 강주연의 조각은 우리에게 묻는다. 하나의 존재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머물면서도 다른 존재에게 열려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작품의 구멍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그 답이 생성될 수 있는 자리를 열어 놓는다. 바로 그 비어 있는 자리에서 강주연의 조각은 물질의 형상을 넘어 관계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조형적 언어로 거듭난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정종효
VI

작가 강주연

강주연Gang Ju Yen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조소전공 졸업, 동 대학원 미술학박사

개인전 12회

  • 2026제12회 인사아트센터 경남갤러리 (서울)
  • 2023제11회 경남교통문화연수원 (창원)
  • 2021제10회 맛산갤러리 (마산) · 제9회 성산아트홀 (창원)
  • 2011제8회 대안공간 마루 (창원)
  • 2010제7회 대안공간 마루 (창원)
  • 2006제6회 대안공간 마루 (창원)
  • 2004제5회 성산아트홀 (창원)
  • 2003제4회 대안공간 마루 (창원)
  • 2001제3회 대안공간 마루 (창원)
  • 1999제2회 캠브리지갤러리 (서울), 코쿠라아트갤러리 (일본)
  • 1998제1회 창원갤러리

현재 ·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 경남미술협회 수석부회장 · 경남조각가협회 회장 · 경남산가람미술협회 회원 · “水” 조각가협회 회원 · 同樂문화예술회 회원 · 창원미술협회 회장 역임
2011년부터 경남현대조각가협회전, “水” 조각회전, 창원미술협회전, 한·일 교류전 등 단체전에 꾸준히 참여해 왔습니다.

고리 하나는 그저 빈 동그라미입니다. 그것이 옆의 고리와 맞닿는 순간 형태가 생기고, 수백 번 맞닿고 나면 조각이 됩니다. 그러니 이 조각들을 이루는 것은 금속만이 아닙니다. 고리와 고리 사이, 비어 있는 자리들이 함께 이 형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인사동에서 이어집니다.

참고 · 『GANG JU YEN — The 12th Solo Exhibition』 도록(2026) — 정종효 평론 「강주연의 조형, 원으로 연결되는 관계의 존재들」, 작가노트, 작품 도판·캡션, 약력 · 전시장 벽 글 「원(圓), 존재와 관계의 연결」 · 전시 현수막. 작품 이미지 ©강주연 · 전시장 사진은 2026년 10월 28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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