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라 「환희1」 · 41.0×31.8cm · 한지, 채색, 먹, 금분
민들레는 작고 여린 존재이지만
바람을 따라 어디든 날아가
새로운 생명을 피워냅니다
꽃은 피고, 그림은 남고
전시장 문을 열면 벽이 온통 파랗습니다. 그리고 그 파란 화면 위로, 흰 민들레 홀씨가 조용히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박은라 개인전 《꽃은 피고 그림은 남고》가 9월 9일부터 14일까지 인사아트센터 5층 경남갤러리에서 열립니다. 한 전시장 안에서 두 개의 전시가 나란히 진행됩니다. 한쪽은 작가가 새로 그린 민들레 홀씨 연작, 다른 한쪽은 작가 부부가 42년 동안 한 점씩 모아 온 소장품 40여 점입니다.
먼저 도록에 실린 대표작부터 보시겠습니다. 화병 하나와, 그 위로 흩어지는 홀씨. 같은 소재인데 배경색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공기가 됩니다.

항아리가 통째로 금분입니다. 화면 아래쪽 무게중심을 금빛 덩어리가 붙잡고 있고, 그 위로 홀씨가 한꺼번에 솟아오릅니다. 오른쪽 아래에 노란 민들레꽃 한 송이. 다 날려 보내고 난 자리에 아직 피어 있는 꽃입니다.

배경이 잿빛으로 내려앉으니 홀씨의 흰빛이 더 또렷해집니다. 항아리 입구에 노란 꽃 한 송이가 얹혀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표정입니다.

화병이 화면 아래로 내려가고 홀씨가 오른쪽 위를 향해 사선으로 흐릅니다. 정지한 그림인데 방향이 있습니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고 있는지가 화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항아리는 금색 선 하나로만 남았습니다. 속이 비치는 그릇 안에 홀씨가 가득 차 있습니다. 담는 것과 담기는 것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 — 이번 연작에서 가장 조용한 화면입니다.

마지막은 가로로 넓은 화면입니다. 낮은 접시 위에 아직 날아가지 않은 홀씨 뭉치가 소복이 얹혀 있고, 그 위로 이미 떠난 씨앗들이 하늘을 채웁니다. 남은 것과 떠난 것이 한 화면에 같이 있습니다.
가까이 서서 금분(金粉)을 찾아보세요. 항아리의 몸통, 잎맥, 씨앗의 갓털 끝에 금이 얇게 올라가 있습니다. 조명 각도에 따라 반짝임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홀씨의 개수를 세지 마세요. 대신 씨앗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 보세요. 화면 밖으로 나가는 씨앗이 반드시 한둘 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쪽이 개인전 구역입니다. 작은 그림들이 눈높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고, 벽 하나가 통째로 파란 화면들로 채워집니다.












개인전 전경 · 2026. 9. 9 · 경남갤러리
민들레는 작고 여린 존재이지만 바람을 따라 어디든 날아가 새로운 생명을 피워냅니다. 나는 그 가벼운 씨앗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머물고 떠나며, 만나고 헤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화면 속 화병과 그 주변을 가득 채운 민들레 홀씨는 지나온 시간과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바람에 흩어지는 씨앗은 사라짐이 아니라 또 다른 곳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가능성이며, 자유와 희망을 향한 작은 몸짓이기도 합니다. 한지 위에 색을 쌓고 금분과 섬세한 선을 더하며 민들레가 가진 여린 생명력과 찰나의 빛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바람을 만나 먼 곳으로 날아가듯, 나의 그림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아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머물기를 바랍니다.
전시장 반대편은 소장품 구역입니다. 크기도 재료도 제각각인 그림 40여 점이 벽 세 면을 채웁니다. 사고팔기 위해 모은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서 만나 마음에 남아 집으로 데려온 그림들입니다.














소장품전 전경 · 한국화 · 서양화 · 판화 · 부조 40여 점

전시장 가벽에 붙은 소장품전 서문
이번 전시는 작가의 41번째 개인전이자, 부부가 42년 동안 그림과 함께 살아온 시간의 기록입니다. 오랜 세월 여러 전시장을 다니며 만난 작품들 중 마음에 남은 그림들을 집으로 데려와 모았고, 그중 40여 점을 선별해 선보입니다.
한국화·서양화, 판화·부조 등 다양한 표현 방식과 작가들의 삶이 섞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듭니다. 전시 중심에는 민들레 홀씨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으며,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내려앉아 오래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42년간 곁에 머물렀던 그림들이 잠시 집을 떠나 관람객을 만납니다. 그림을 바라본 시간과 삶의 시간이 함께 담긴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느껴보시길, 이번 전시가 작은 기억 하나를 남기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한 사람의 그림과 한 부부의 시간이 같은 공간에 놓입니다. 새로 그린 홀씨가 한쪽 벽에서 날아오르고, 반대편 벽에서는 사십 년 넘게 곁에 두었던 그림들이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9월 9일 오후, 전시장 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오픈식이 열렸습니다. 손님들이 앉고, 인사말이 오가고, 다시 흩어져 그림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오픈식 세레머니 및 전시장 · 2026. 9. 9 · 경남갤러리
홀씨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림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집으로 갔다가, 사십 년이 지나 다시 전시장으로 나옵니다. 이번 전시는 그렇게 떠나고 남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9월 14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5층입니다. 파란 벽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춰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