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혜정 〈공존의 가치〉 · 162.2×112.1cm · Oil on Canvas · 2021
본래 다른 자리에 있던 존재들이 한 화면 안에서 조용히 마주합니다. 대립도 긴장도 없이, 그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있을 뿐입니다.
노혜정 작가의 제17회 개인전 《COEXIST》가 인사아트센터 5층 경남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호랑이와 백장미, 얼룩말과 나무처럼 자연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생명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유화 연작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고요함입니다. 정밀한 사실 묘사 위에 넓은 여백이 얹히면서, 화면은 소리를 낮춥니다. 작가는 공존이라는 말을 크게 외치지 않고, 두 생명을 나란히 앉혀 놓고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30년에 걸친 작업의 궤적이 담긴 다섯 화면입니다.
작품 이미지 ©노혜정
〈공존의 사유〉를 보실 때 — 화면 왼쪽의 백호는 붉은 사각 프레임에 몸을 기대어 잠든 듯 놓여 있고, 오른쪽의 얼룩말은 평온하게 웅크린 채 등에 작은 녹색 섬을 품고 있습니다. 두 존재는 마주하고 있지만 긴장도 대립도 없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지킨 채 조용히 함께 있을 뿐입니다.
작가에게 꽃은 ‘고난의 여정에 대한 경의와 연민’이고, 얼룩말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작가는 생명이라는 주제를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면 속 선명한 줄무늬와 만개한 장미, 투명한 물방울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기억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것에 가깝습니다.
노혜정의 작업세계는 하나의 양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초기의 극사실 회화에서 출발해 생명체의 구조를 탐구하는 추상으로, 다시 입체와 설치로 확장되었고, 이후 극사실적 묘사로 회귀했다. 이러한 변화는 형식적 변주를 통해 생명과 존재, 관계와 공존에 대한 사유가 점차 심화되고 확장되는 과정이었다.
2005년 첫 개인전의 〈생성-세포분열〉 연작은 그 출발점이었다. 화면 속 유기적 형상들은 세포의 증식과 분열을 연상시키며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이 시기 작가는 개별 존재보다 관계의 구조에 주목하고 있었다.
2010년 이후 〈생성〉, 〈대화〉, 〈Family〉 등에서 생명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관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전의 세포가 생물학적 유기체의 상징이었다면, 이후의 세포 형상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은유가 된다. 생성의 문제가 결국 공존의 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2016년 〈꽃은 나무가 되어…〉 이후 작가는 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서사로 시선을 돌린다. 얼룩말, 꽃, 물방울, 나무는 더 이상 조형적 기호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삶과 가족사, 상실의 경험을 매개하는 상징 체계가 된다.
최근 〈Coexist〉 연작에서 백호의 흰색과 갈색 줄무늬, 얼룩말의 흑백 줄무늬는 서로 다른 종임에도 유사한 조형적 리듬을 형성하며 차이 속의 공통성을 암시한다.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여백은 빈 곳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정신적·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초기의 세포분열 연작이 생명의 ‘생성’을 탐구했다면, 최근의 공존 연작은 생성 이후의 문제인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결국 이 작품은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포괄하는 것이 공존의 본질임을 말한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이 넉넉합니다. 그림 속 여백이 전시장의 여백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전시 전경 18컷 · 인사아트센터 경남갤러리 5F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히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노혜정 작가의 화면은 그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호랑이와 얼룩말을 나란히 앉혀 놓고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그 조용함이 오래 남는 전시였습니다. 🌿